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문단 편집) === 1920~1950년대 === ||[youtube(LzHldZv_gAs, width=400, height=210)]||[youtube(05bnkCUXwf0, width=400, height=210)]|| ||리스트-파가니니 연습곡 2번 (rec. 1930)||카르멘 변주곡 (rec. 1947)|| ||[youtube(8Hux5fVzfJg, width=400, height=210)]||[youtube(4ksVduF2rr4, width=400, height=210)]|| ||브람스, 왈츠 Op.39 No.15 (rec. 1950)||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rec. 1943)|| ||[youtube(1NTVPua7mbA, width=400, height=210)]||[youtube(rAZ2I08CkP8, width=400, height=210)]|| ||생상스-리스트-호로비츠 편곡 죽음의 무도 (rec. 1942)||수자-호로비츠 [[성조기여 영원하라]] (rec. 1948)[* 라이브 공연이다. 다소 정적인 녹음보다 훨씬 더 박진감 넘치게 친다. ]|| ||[youtube(sHi_DsYb67o, width=400, height=210)]||[youtube(ziGRB6Bqzkw, width=400, height=210)]|| ||프로코피예프, 토카타 (rec. 1930)||도흐나니, 6개의 콘서트 에튀드 Op. 28, No. 6 (rec. 1928)|| ||[youtube(hp3MsGkuENs, width=400, height=210)]||[youtube(XJ7PllAgnZw, width=400, height=210)]|| ||스크랴빈, 소나타 Op.68 (rec. 1953)||클레멘티, 소나타 Op.34 No.2 (rec. 1954)|| 데뷔 당시 뛰어난 테크닉으로 인정, 칭송받았다. 당연하지만 이 시기의 가장 확연한 차별점은 젊은 호로비츠의 '''신체적 능력'''인데, 특히 가장 젊었던 30년대의[* 즉, 호로비츠의 '''20대''' 시절.] 녹음들은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기계적일 정도로 오차없는 정확도를 자랑한다. 깔끔한 음질의 70-80년대의 녹음에 먼저 익숙한 팬들이 처음 접했을 때 바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특히 같은 레퍼토리를 대조했을 때.] 후기 호로비츠의 연주에게 인간미를 느끼게 할 정도로(!) 사기적인 테크닉, 힘, 정확도를 모두 갖춘 시기였다. 옥타브 연타나 빠른 속도의 화음 패시지 등의 기교가 가장 단단했었는데, 40년대 초반에 녹음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연주들을 들타보면 3악장 피날레 옥타브 난사 부분에서 초당 10회 꼴로 건반을 두드리는 초인적인 손목힘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하듯이 페달을 통해 음을 흐리는 요령 하나 없이 옥타브 전체가 총을 난사하듯 또박또박 들린다. 1920~50년대의 그는 우상으로 섬겼었던 라흐마니노프 풍의 전통을 많이 물려받았다. 즉, 직선적이고 박력있으며 모든 부분에서 깔끔하고 완벽함을 이상으로 삼았다 할 수 있으며 그의 스타일은 그가 가진 완벽한 테크닉과 조화를 이루면서 더욱 찬란히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권위자로서 작곡가에게까지 인정받았고[* 20년대 호로비츠의 미국 데뷔(뉴욕) 직전에 만난 후 라흐마니노프가 43년에 죽을 때까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가 친 그의 3번 협주곡에 대해 엄청난 찬사와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호로비츠가 자신보다 이 협주곡을 더 잘 연주하며, 자신은 항상 이 곡이 이렇게 연주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생전에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연주에 너무 감명받았는지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편집권을 호로비츠에게 맡겼다. 여러 녹음에서 보통 연주 속도를 늦출 가장 까다로운 부분에서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걸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이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https://www.youtube.com/watch?v=1NTVPua7mbA|1942년에 녹음된 <죽음의 무도>다.]] '''그리고 단연코 압도적이다.''' 클라이막스는 여타 악명높은 곡들에 비해 기교적으로 난해하지 않지만 피아니스트들이 매우 힘들어 하는 부분이다. 대다수의 경우 페달에 많이 의존하고 간간히 템포를 늦추며 힘조절을 하는게 보통인데 호로비츠는 페달을 거의 쓰지 않고도 모든 음을 하나하나 뚜렷하게 강타하고, 피날레에서는 힘이 빠지는 기색을 보이기는 커녕 더욱 앞부분보다 템포를 훨씬 더 올려서 연주를 한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힘의 한계에 달해서 페달로 뭉개기 시작하는 양손 옥타브에서는 마치 건반이 튕겨져 나오는 듯한 소리를 내고(그것도 매우 빠르게), 이것마저도 모자라 원래 왼손은 그냥 코드이고 오른손만 옥타브로 연주하는 클라이막스를 왼손까지 옥타브 연타가 생기게 직접 바꿨다. 이 모든것을 '''아예 페달을 안쓰고''' 눌러 찍는 초인적인 힘을 보여준다. [youtube(vRvVk12dvkg)]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녹음에서는 당시 27세였던 호로비츠의 힘과 정확도가 인상적이다. 특히 33:30초에 천둥처럼 울리면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포르테시모의 클라이막스 코드는[* 그만이 낼 수 있다는 소리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아 일부러 그런 소리를 내지 않은 그에 견줄 만한 피아니스트들도 있지만, 극소수이다. 물론 어차피 오케스트라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테니(...) 힘을 아끼는 피아니스트들이 대부분이다.] 섬뜩할 정도의 테크닉에 대한 방증이자, 전성기 시절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33:36초의 양손 옥타브 하행은 저게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의심이 갈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워낙 옛날 사람이다 보니 이러한 초기 녹음 자체가 많이 남지 않아있고, 남은 것 자체도 음질이 열악하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점. 이때는 LP도 있기 이전어어서 [[표준시간 음반|SP]] 음반에 녹음을 했고, 녹음비 자체도 매우매우 비쌌다. 그래서 흔히 [[죄르지 치프라]]등의 기교파 피아니스트들과 테크닉 면에서의 비교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녹음조차 되지 않은 호로비츠의 초기 기교 레퍼토리들(이를테면 리스트의 돈 주앙의 회상, 스페인 랩소디, 단테 소나타 등)을 고려하면 비교 자체가 힘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